담사이에 낀 고양이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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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좋아하는 건물이 뭔가요?”

아주 여러 번 비슷한 질문을 받았다. 한 두번 겪는 일도 아닌데 그럴때마다 내 머릿속은 하얗게 변하곤 한다.

 

건축가로서 작업을 시작한지는 벌써 8년, 처음 건축이라는 학문을 접한 후로는 15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아직도 이런 질문엔 대답을 하질 못한다. 세월을 헛되이 흘려보낸 것 같은 허무감이 밀려온다. 그동안 좋아하는 건축가, 좋아하는 건물 하나 정해놓지 않고 무얼했나? 난 매번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나를 건방진 애송이쯤으로 보았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눈만 높은 이상주의자로 보았을수도 있다.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어딘가요?”

이런 질문엔 한결 대답이 수월해진다. 아니, 오히려 마구마구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나는 어릴적 살던 아파트단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무슨 귀여운 생각에서였는지, 그 곳 건물들은 온통 살구색페인트로 칠해져있었다. 마치 전래동화처럼 저쪽으로 가면 아랫마을이 있고 저쪽으로가면 윗마을이 있는 재밌는 곳이었다. 아랫마을엔 슈퍼마켓이 있었고. 비디오 가게가 있었다. 주인들은 모두 키가 작았다. 윗 마을엔 뚱뚱한 쌍둥이 자매가 살았고, 반에서 가장 큰 친구가 살았다. 초등학교 때 키 순서로 자리에 앉는것처럼, 당연히 아파트도 그런식으로 배정이 되는 줄로만 알았다. 우리집은 윗동네와 아랫동네의 중간쯤에 있었다. 내 키에 알맞는 동 배정이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엔 적당한 화단이 있었다. 그곳엔 기어 올라가기에 적당한 사이즈의 바위가 군데 군데 놓여 있었다. 바위에 올라가기 좋아하는 아이들 덕분에 바위에선 늘 윤기가 흘렀다. 놀이터와 공터 곳곳엔 적당한 사이즈의 콘크리트 벤치가 있었다. 사실 그것은 벤치가 아니고 바닥에서 솟아나온 평평한 환기구였다. 앉아서 간식을 먹기에 좋은 곳이었다. 그곳은 빵집과 연결되어 있어서 가끔 맛있는 빵냄새가 올라왔다. 당시 환기구의 존재를 몰랐던 우리는 그것을 빵의 영혼이라고 불렀다. 아파트 출입구 바닥은 매끈해서 팽이를 돌리기에 좋았다. 무언가를 할 때 아무 곳에서나 하는 법은 없었다. 아파트 구석구석마다 정확한 역할이 부여되어 있었고, 우린 놀이를 바꿀때마다 장소를 바꾸어가며 바쁘게 움직였다. 난 아파트단지의 그런 점이 너무 좋았다.

내가 살던 아파트가 고급 아파트단지였다면 괜한 멋을 부려서 나의 기억을 많이 훼손시켜 놓았을텐데, 다행이 그곳은 무척 소박한 곳이었다. 요란한 입구 장식도, 높은 담장도, 아파트 내 상가도, 거추장스러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지어진 것 외에 부가적으로 필요한 것들은 부지런한 경비원 아저씨들이 직접 만들었다. 벽돌을 쌓아 벤치를 만들고 어디선가 촌스러운 조각을 주워와 풀밭에 올려두기도했다. 철근을 구부려 울타리를 만들고 각잡힌 글씨로 “잔듸보호” 라고 써놓았다. 대나무를 좀 심어놓고 이곳이 유명한 대나무 숲이 될 거라고 이야기하던 생각도 난다. 생각해보면 정말 부지런한 사람들이었다. 아저씨들 덕분에 그곳은 매일 변화하는 곳이었다. 쓰레기통에 밝은색 페인트를 조금 칠해본다든지, 꽃이 잘 보이는 쪽으로 돌의자를 조금 돌려놓는다든지 하는 정도의 변화들이었다. 무엇이 변했는지는 나 정도 한가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눈치를 챌 수 없었다는 점, 나는 그러한 점이 정말 마음에 들었다.

 지금은 연희동에 살고있다. 어릴때 아파트단지처럼 윗동네 아랫동네가 나누어져있다. 난 키가 많이 컸으므로 당연히 지금은 윗동네에 살고있다. 아랫동네엔 사러가쇼핑센터라는 거창한 이름의 마트가 있다. 사러가 쇼핑센터는 내가 17년 전 맨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아니 훨씬 이전부터 있어왔던 이 동네의 변하지 않는 풍경이다. 마트 옆에는 마트만큼이나 큰 공터가있다. 사러가 마트의 주차장이다. 사러가 마트의 주인은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인지, 아님 이곳을 아주 사랑하는 사람인지 궁금하다. 이 비싼 땅을 개발하지 않고 공터로 남겨놓는 건 엄청난 낭비라는 것을 알고있다.

연희동은 참 조용한 곳이었는데 요즘은 많이 심란하다. 명동에나 있는 줄 알았던 정신나간 핸드폰 가게가 아랫마을에 생겼다. 그곳에선 인형이 춤을 추고 하루종일 시끄러운 노래를 틀어놓는다. 동네에 간판이 점점 커지고있다. 신촌이 이렇게 당했고, 홍대입구가 이렇게 당했고, 연남동이 이렇게 당했다. 나는 그런것을 다 보고 자라왔다. ‘이제 우리 차례인가?’ 싶은 마음에 나는 사러가마트를 걱정한다. 그것마저 없어지면 이곳도 끝나는 것이다.

늦은 밤, 핸드폰 가게가 불을 끄는 시각이 되면 주차장의 풍경은 사뭇 달라진다. 차가 없는 주차장은 아스팔트 공원으로 변한다. 아무것도 없는 곳을 가로등은 성실하게 비춘다. 마치 스케이트장처럼 미끈하고 깨끗한 모습이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소복이 눈이쌓인 아침을 보는것처럼 매일이 놀랍다. 난 가끔 그곳을 지나며 크게 숨을 내쉴 때가 있다. 이 넓은 땅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나에겐 큰 위로가 된다. 주차장의 담장은 겨우 무릎 정도의 높이이므로 아무나 쉽게 들어올 수 있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자전거 타는 연습을 한다. 심란한 연희동을 사러가마트는 이렇게 위로한다. 주차장은 아침에도, 밤에도 주차장이다. 이곳을 공원입네 꾸미지 않았다. ‘이곳은 주민들을 위해 개방된 장소입니다.’ 라고 적어놓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주차장은 일관적으로 나에게 무심했다. 내가 기댈 수 있는 무심한 존재가 있다는 점, 나는 그 점이 정말 마음에 드는 것이다. 

 어느 위대한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어느 곳에서 지루함을 느끼길 바랬을지, 어느 곳에서 탄식을 내뱉길 바랬을지 건축가의 명쾌한 의도를 알 수 있었다. 이토록 요염한 형태를 구현하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지, 심지어 건축가의 혈액형이 A형일지 B형일지까지, 모든것이 눈에 선했다. 보기드문 훌륭한 건물이라며 감탄했지만, 역시나 그 이상의 흥미는 생기지 않았다.

건축가는 공간을 다루며 항상 무언가를 의도한다. 얼마나 좋은 건축인지는 그 의도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에 달려있다. 아주 저급한 수준의 건축가는 그 의도를 너무 적나라하게 드러낸 나머지 그 공간을 싫어하도록 만든다. ‘걷고싶은거리’라고 적힌 거리에 들어서면 걷고 싶지 않아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훌륭한 건축가는 그 의도를 숨기기 위해 작은 디테일을 고민한다. 새로운 공간에 들어서는 것을 머뭇거리지 않게 하려고 문틀을 숨기고, 풍경과 하나가 되는데 방해가 되는 난간은 최대한 얇게 만든다. 공간의 분위기에 거스르지 않도록 재료의 온도에까지 신경을 쓴다.

잘 지은 건물을 보면 그런 노력이 보인다. 필요없는 것들을 드러내지 않기 위한 노력, 벽돌과 타일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려는 노력, 마치 아무 노력 안한 듯 보이려는 노력… 그런 노력의 흔적들을 보며, 나는 하루 이틀 사흘 그것을 위해 희생했을 수많은 건축인들의 밤을 기린다.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입에 쌍욕을 달고 살았을 노동자들을 기려본다. 이것은 건축인가 기념비인가?

훌륭한 건축물 옆에 초라한 담벼락이 있다. 건축가는 담장보다는 건물이 돋보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벼락을 일부러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앞에 고양이 한마리가 불쑥 생겨났다. 어디서 나타났다고 설명하기엔 조금 애매한 구석에서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고양이는 슬금슬금 다가가더니 담장과 건물사이 비좁은 공간에 식빵처럼 몸을 구겨넣기 시작했다. 도대체 왜 그러는지는 우리 묻지 말기로 하자. 가장 위대한 건축물 앞에서 난 고양이에게 시선을 빼앗겨버렸다. 난 한참동안 고양이를 쳐다보았다. 고양이는 내 존재를 알고 있지만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고양이의 이런 의뭉스러운 성격이 좋다. 고양이는 건축가의 의도를 깡그리 무시하고 가장 쓸모없는 공간에 몸을 맞춘다. 마치 아이들이 아파트단지 구석마다 역할을 부여했던 것처럼 고양이는 그렇게 건물을 이용하고 있었다.

건물은 아무리 잘 지어봐야 건물이라는 생각을 한다. 자연이 위대한 점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며, 건축이 아무리 노력을 한들 자연을 따라올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어떤 훌륭한 설계도 자연스러움을 계획할 수는 없는 법이다.

나는 나에게 해답을 주는 공간보다 나에게 질문을 던지는 공간이 좋다. 완성된 공간보다는 완성되어가는 공간이 좋다. 누군가의 의도로 만들어진 공간은 흥미가 떨어진다. ‘이곳에서 뭘하면 좋을까?’ 궁리하게 만드는 공간이 더 좋다. 마음에 드는 공간이 있다면 난 헤집고다니며 이런 저런 역할을 부여할 것이다. ‘이곳은 팽이를 돌리기에 좋겠어.’ ‘그리고 이곳은 앉아서 빵을 먹기에 좋겠어…’ 그래서 나는 건물보다 광장이 좋다. 건물보다 공원이 좋고 골목길이 좋다.

‘아무리 그래도 건축가가 건물을 좋아하지 않아서야…’다행히도 시간은 모든 것을 자연으로 되돌려놓는다. 카리스마 넘치던 어느 건축가의 실험은 먼 훗날 콩트가 되어버렸다. 콜로세움은 건물이었지만 이제는 산이나 바위 같은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의도해야만 하는 건축가의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에게 이런 사실은 큰 위안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광장도, 골목도, 사러가 마트 주차장도 처음에 태어날땐 모두 건축이었다고 한다. 건물에 때가 타고, 건물이 촌스러워 보이기 시작하고, 건축가의 의도를 벗어나 건물이 스스로 웅얼거리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나는 건물에 대해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어떤 건물이 좋으세요?” 이 질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본다. 난 담장에 낀 고양이가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차장이 좋고, 경비아저씨의 부지런함이 좋다.

좋아하는 건물이 잘 생각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은 그런 곳이 아직 없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곳은 너무 흔하기 때문이었다.

 

글/그림 한승재

※어라운드 매거진59호에 수록된 글입니다.